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심화조 사건 (문단 편집) == 반전 == 김정일은 자신의 목표가 모두 이루어지자 채문덕과 집행간부들에게 영웅 칭호를 내렸고, 참모장 황진택에게는 [[김일성훈장]]까지 수여한다. 그리고는 계속해서 불순분자 색출을 하도록 격려했다. 이렇게 광적인 열풍이 계속되어가는 듯 하던 심화조 사건은 일부 평양 간부들과 주민들이 던진 '''{{{#red "만일 김정일에게 충성을 바친 간부들과 주민들이 다 간첩이라면 그동안 북조선이 어떻게 유지가 됐을 수 있었겠는가?"}}}란 질문에 의해 반전을 맞는다.'''[* 사실 이건 대숙청이나 문혁 때도 나왔던 의문이었다. 레닌의 혁명동지들이 줄줄이 처형당하는 와중에 정치국에서는 가장 절망적이었던 혁명 때 같이 한 동지들이 30년대에 갑자기 트로츠키에게 왜 붙는단 말인가? 라는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 사람들도 모두 같이 죽었다. 하지만 이러한 의문이 대중으로까지 확산되면서 스탈린이 현지지도를 하는데 어느 노인이 목숨 걸고 당의 혁명전사들을 무리죽임하는데 그 혐의를 믿을 수 없다고 직언하는 상황이 벌어졌다. 현지지도 같이 간 측근들은 뒤집어졌지만 스탈린은 굳어진 얼굴로 저 말이 맞다고 하고 돌아갔고, '''얼마 안가서 예조프가 숙청된다.'''] 이러한 의문이 제기되자 김정일은 그야말로 "[[토사구팽]]"을 시전하는데, "[[국가안전보위부]]와 [[보위사령부]]가 공동으로 사회안전성을 조사하라"란 명령을 내린 것이다. 이에 [[국가안전보위부]]와 [[보위사령부]]가 김정일에게 사건을 제대로 보고하기 위해 내사를 하여 심화조 수사의 위법성을 철저히 조사하였다. 은폐가 일상화된 북한에서 심화조 사건 당시의 각종 가혹행위가 지금까지 생생하게 전해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. 결국 이렇게 시작된 심화조에 대한 조사는 결국 채문덕이 개인적인 원한을 이 사건에 이용했다는 보고서를 올리면서 심화조의 궤멸이 시작되었다. 2000년 초에 시작된 심화조 조사를 통해 7월에 [[니콜라이 예조프|채문덕이 처형당했고]][*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한달 전인 6월 15일에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. 김정일은 회담장에서는 실실 웃으면서 뒤로는 이런 일들을 벌이고 있었다는 얘기.], 9월에는 나머지 심화조 단원들이 전격 체포되었고, 사회안전성 참모장 황진택과 일부 간부에게는 최고 20년에 이르는 징역형이, 심화조 세포조직을 책임졌던 각 도, 시의 안전부장과 정치부장은 10년형, 심화조 사업에서 앞장서 극악무도한 고문 방법을 맡았던 예심원과 고문 전문가 수백 명에게는 [[무기징역]]형이 내려졌고, 전국의 안전원 6,000명도 중형 내지는 [[해임|철직]], 추방되었다. 그리고 같은 해에 김정일의 지시로 사회안전성이 [[인민보안부|인민보안성]]으로 개칭되는데, 이것도 실소를 금할 수 없는 게 개칭의 이유가 "인민들에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기 위함"이란 것이다. 덧붙이자면 [[북한]] 고위층이 진작 이 상식적인 반문을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지만 심화조 사건은 철저히 [[김정일]]의 권력 강화를 위한 친위 쿠데타였고 심화조 사건에 반문한다는 것은 [[김정일]]의 행보에 반발하는 것이니 즉각 숙청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. 당연히 김정일이 숙청을 행하는 기간에는 함구 되었다가, 숙청이 완료되었을 시 국면 전환 및 토사구팽을 위해 그 상식적인 여론을 이용했을 것이다. 여담으로 심화조 가담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던 [[장성택]]이었다.[* 채문덕은 장성택의 잘못까지 뒤집어 썼고 총살로 처형됐다.] 피해자 중 문성술은 장군님에게 보고하면 너희는 다 죽는다고 끝까지 저항하다가 죽었다는 것이 보고되어 김정일이 신념이 있는 인물이라고 칭찬했다는 탈북자 설이 도는데 이 말이 정말인지 김정일이 문성술만은 [[애국렬사릉]]에 묻어주었다. 해당 묘비에 문성술의 사망 날짜는 1999년 3월 10일로 되어 있다. [[태영호]]의 증언에 따르면 외교관이었던 문성술의 사위도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장인어른이 복권되면서 석방되어 외무성으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얼마 되지 않아 은퇴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